2003-06-02 10:29
홍용찬 한국국제해운대리점협회장
창간 32주년을 맞은 코리아쉬핑가제트에 우선 축하 말씀드립니다. Robert Fulton 의 증기선인 Clermont호가 NewYork과 Albany 사이에 최초의 정기항로를 왕복하기 시작한 것이 1807년, ETD는 있었어도 ETA는 대게 잘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를 정기선 Service의 효시로 여긴다. 그 뒤로 1824년부터 세계 유수의 정기선사들이 출현하면서 현재 유럽. 극동 동맹의 전신인 Calcutta Conference가 맺어진 것은 1875년. 이로부터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맞이한 20세기는 非運의 海運史를 열어간다. 세기 벽두에 日本 군함에 궤멸되어버린 Russia의 극동함대와 Baltic함대, 그리고 1차 대전 중 수몰된 독일함대, 2차 대전 때의 日本의 야마도 전함은 70,000DWT에 길이 263m의 거대한 덩치가 27knot로 항해하며 2,500명을 승선 시켰지만 미국 항공기에 의해 힘 한 번 못 써보고 보잘 것 없이 격침되는 비운의 최후를 맞는다.
거대 여객선단의 앞날도 신대륙에 대한 온갖 기대와 희망으로 출발했던 Titanic의 처녀 항해 침몰이란 사건이 보여주듯 1932년에 화려한 데뷔를 한 Normandie는 83,000G/T에 32.5knot(시속 60km)를 자랑하며 후발선인 영국의 Queen들과 경쟁했지만 모두들 時運을 타지 못했다. 정기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Full-con 선단의 등장은 1968년으로 삼는데 그 이후 수삼년 사이에 세계 굴지의 정기선사들은 모두 이 대열에 참여한다. 우리 나라도 비록 이들 외국적선에 日本 Kobe항을 위주로 부산에서 feeder로 운송하여 환적하는 서러움은 있었어도 본격적인 해운 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발돋움에 이때에 시동을 걸었다. 때 맞춰 시의 적절하게 선견지명을 갖춘 이들에 의해 코리아쉬핑가제트紙가 창간되면서 우리 나라에 정보의 방향타가 등장한다. 그 후 32개 성상동안 귀지는 우리 나라 현대 해운의 耳目口鼻 역할을 수행하며 物流業界에 커다한 공헌을 해 왔으며, 그 동안 수록된 귀중한 자료들만 모아서 정리해도 산 사료로서의 최고의 풍요로움을 축적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본인으로서도 1974년을 전후에 “나의 컨테이너 授業”이란 제목으로 1년여 동안 칼럼을 연재하면서, 독자들과 더불어 현대적 정기선 초창기의 새로운 것을 工夫할 수 있었던 것을 자랑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아쉬운 것은 우리 해운업계의 현실이 여의치 않아, 값진 정보의 제공이나 선사간, 船荷主間 또는 해운 부대 사업자와의 사이에 주도적으로 교량적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매체가 절실히 요구되는바 독보적인 해운 전문지로서의 귀지에 대해 적절한 기구를 부탁드리거나 Internet에 Home page를 열어 시시각각 변해가는 Shipping Information을 전달해 주셔서 우리 나라 物流업계, 나아가 무역과 국가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달라고 하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요. 귀지의 창간 32주년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