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0 16:02

더 세월(24)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22. 시신 현장으로

제세실업이 추진 중인 제주항의 물류창고는 설계를 마치고 기초공사에 들어갔다. 머린컨설팅 사장 서정민은 물류창고의 배치와 냉동창고의 크기 등에 관한 컨설팅을 마친 터라 이제 자신의 시간을 좀 갖겠다고 제세실업 이팔봉 회장에게 보고했다.

“그러게. 일도 중요하지만 자넨 건강을 더 챙겨야 해.”

이 회장의 배려는 늘 고마웠다. 한편으로 지금 서정민은 가슴이 불안하게 뛰는 걸 느꼈다. 도피자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매실밭 현장을 살펴봐야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세모 사건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죽다니?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서 일종의 사명감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스트레스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는 서정민은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도피자의 죽음에 대해 그냥 신문 쪼가리만 쥐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들이를 서두르는 서정민을 본 이순정은 가만히 있기가 불안했다.

“환자가 어디로 가겠다는 거예요? 그저께도 의사 선생님 말씀 있었잖아요. 절대 안정.”

그녀는 사업 파트너가 일을 제쳐두고 세월호 사건에 자꾸 몰입하는 자체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난 한 번 죽었던 사람이요. 언니 순애 씨와 함께 저 세상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구. 도피자의 최후 장소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요.”

이순정이 언니의 뒤를 이어 제세실업의 기획업무 책임자가 된 이후 두 사람은 업무상 같은 장소에 머무를 때가 많다. 그러니 그녀는 누구보다 서정민의 건강상태를 잘 안다.

“그럼 저와 같이 가요. 운전은 제가 할게요.”

이순정은 서정민을 운전석에 앉힐 수 없었다. 공황장애 같은 것이 갑자기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정민 또한 여자에게 SUV 차량 운전을 맡기는 게 주저됐다. 사업상 해안길이나 산길을 자주 운행해 본 그가 운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겼다.

“순정 씨가 SUV 운전을?”

“프랑스에서 친구들과 놀러갈 때 SUV를 자주 렌트해서 운전해봤어요. 잘할 수 있다구요.”

6월 20일 금요일 오후 서울을 출발할 때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덮였다 걷히기를 반복했다. 금방 소나기라도 한바탕 퍼부을 것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꼭 이런 날씨에 먼 길을 가야겠느냐고 이순정이 말리자 주말을 이용하는 게 시간절약의 방법이라고 맞서는 서정민이었다.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출발한 차는 서해안고속도로를 거쳐 황간IC를 빠져나왔다. 남쪽 터널을 지나 송치재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경. 하지 무렵의 해는 산에 가려지지 않아 휴게소 주위는 아직 밝았다.

운전대를 잡은 여자의 손이 부드럽다고 서정민은 생각했다. 차를 세우고 핸드브레이크를 잡아당긴 후 차에서 내리는 모습도 부드럽고 능숙하다. 능수능란함이 바로 부드러움인가.

그들은 저녁 먹을 장소부터 찾았다. 오는 도중 커피와 스낵으로 점심을 때웠기 때문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둘은 이미 언론에 떠들썩하게 난 염소탕집에 호기심이 당겨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주인이 계시지 않는데 염소탕 요리 가능할까요?”

20대 중반의 청년이 손님을 맞이하기에 서정민이 물었다. 주인 변 씨(61)와 정 씨(56 여) 부부가 구속된 상태에서 요리가 어떻게 될까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흑염소 요리는 실제로 제가 하기 때문에 별 지장은 없습니다. 맛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요리하는 걸 보시면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청년이 보양식 요리를 어떻게 하는지 서정민은 내심 궁금했다. 다행히 청년이 요리하는 모습은 방안에서도 다 보였다. 완전히 익은 고기를 건져 썰고 찢어 맑게 거른 육수에 집어넣은 뒤 대파 배추 토란대 고사리를 함께 넣어 같이 끓이다가 들깨가루와 소금을 넣고 조금 더 끓였다. 생강과 감초 양파 사과가 들어간 것은 이해되는데 손가락 길이의 엄나무가 들어간 것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냄새를 없애고 맛을 내려는 한 과정이겠지 생각했다.

이순정이 수저를 챙기면서 서정민을 바라보았다.

“서 사장님은 보양 좀 하셔야 합니다. 최근 몸이 많이 허약해진 것 같아요. 돼지고기 요리도 한 접시 시킬까요?”

이순정의 말에 청년은 그것도 좋은 궁합이라면서 주방에 있는 멧돼지 재료를 보여줬다. 청년은 스스로 구원파 신도임을 밝혔다. 주인 부부가 구속돼 염소들이 굶어죽게 생겨 먹이를 주기도 한단다. 유 회장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설교 동영상이나 책을 통해 가르침과 행적을 잘 알고 있다면서 청년은 그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검찰 발표나 언론보도는 쓰레깁니다. 보도내용을 인정할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염소탕과 멧돼지 요리가 들어왔다. “맛이 아주 좋은데 유 회장도 이 요리를 좋아하느냐”고 서정민이 묻자 청년은 사실 염소탕집을 오픈한 계기도 회장님의 추천이라고 했다.

서정민은 시계를 보았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매실밭으로 갑시다. 시신이 있었다는 그 현장으로.”

국도를 따라 갔다. 도로 근처에 염소가 보였으나 멧돼지는 보이지 않았다. 고기를 어디서 구했는지가 궁금했으나 멧돼지는 도심 부근에서도 출몰하니 사냥이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장 가까이 도착해 차를 세워놓고 매실밭으로 들어갔다. 접근금지 테이프가 쳐져 있는 곳의 안쪽에는 시체 대신 풀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민가에서 불과 25미터 떨어진 곳. 왜 사체가 늦게 발견됐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민가의 개 두 마리가 낯선 사람을 보고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목줄이 없어 마음만 먹으면 낯선 사람을 공격할 법 했지만 얌전했다. 개는 시체 냄새에 예민하다던데 사망한 지 오래돼서 냄새를 맡지 못한 건가. 그렇다면 누군가 나중에 시체를 옮겨놓았다?

궁금증을 품에 안고 차에 오른 두 사람은 서울로 직행하는 대신 구레 지리산온천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다. 서정민은 운전대를 잡은 이순정 옆에서 휴대폰으로 방 두 개를 예약했다. 두 사람은 업무상 외지 출장을 갈 때 종종 같은 호텔에 묵곤 했던 터라 계획에 없던 하룻밤의 숙박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저녁 9시경. 방에서 샤워를 하고 몸을 닦고 있던 서정민은 호텔방 현관 벨소리에 문을 열었다. 경찰관 두 명이 턱 버티고 서 있었다. 신고가 들어와서 방문했다고 한다. 선임자로 보이는 경찰이 한발 앞으로 다가선다.

“매실밭에 갔다 오셨지요?”

“그런데요?”

서정민이 대답했다.

“구원파가 유씨 일가를 비호하고 있습니다. 신분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짜증이 났지만 서정민은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난 세월호 피해자요. 이름 석 자 똑똑히 확인해보시라구요.”

“나중에 확인해 보겠습니다만, 민감한 장소 출입은 유의하셔야 합니다. 특히 늦은 시간에… 워낙 여론이 들끓어서 말입니다. 동행한 여성분은 별도 조사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실례합니다.”

장남 등 유씨 자녀들 검거에 예민해 있는 검경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그들은 돌아갔다. 조용히 쉬었다 가려던 계획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서정민은 이순정의 방으로 인터폰을 걸었다.

“방금 경찰에서 다녀갔다구. 우리를 도피자의 끄나풀로 오인했는가 봐. 정신이 산란해서 맥주 한잔해야 밤을 보낼 것 같은데….”

이순정이 서정민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이미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버럭버럭 마시고 있었다.

“화난다고 그렇게 술을 마구 마시면 되나요. 의사 선생님 처방도 존중하셔야죠.”

이순정이 정색을 했다.

“술 마시라는 의사 봤나요. 오늘은 특별한 상황이니 조금만….”

그러면서 그는 맥주 한 캔을 따서 이순정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순정 씨와 함께하면 어쩐지 마음이 편해요. 나를 남자로 보지 않으니까.”

“저도 정민 씨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절 여자로 보지 않으니까 말예요.”

“되로 주고 되로 받는 본전장사 그만하고 이제 수지맞는 장사나 합시다.”

“어떻게?” 이순정이 귀를 세웠다.

“오늘만큼은 이성으로 봐주기로.”

“그동안 알뜰히 구축해온 우리 관계를 허문다고요? 안 돼요.”

“난 맥주의 상처가 큽니다. 맥주만 마시면 언니가 환상으로 떠올라요. 가슴이 조이기도 하고…. 이런 걸 공황장애라고 하는 건가?”

“이제 언니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해요. 빨리 치유돼야 한다구요. 맥주 대신 와인을 주문할까요?”

“괜찮아요. 실컷 아파봐야 나아질 수도.”

“안 돼요. 와인 하시자구요.”

얼마 후 그들은 지하 1층 와인바 ‘로망’에 내려와 있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라고 둘은 새로운 상황을 맞이했다. 아주 오랜만의 특별한 시간. 상대방이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한다고 둘의 가슴은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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