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정부의 해운업 합리화 조치에도 변함없이 명맥을 유지하며 한국해운업 발전에 기여해 온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천경해운 OB 모임 초대회장이었던 김영덕 전 천경해운 전무는 현업에서 은퇴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회사를 향한 애정이 여전히 각별하다.
최근 서울 을지로 인근에서 열린 천경해운 OB 모임에는 고문인 정극 전 전무와 1~2대 회장인 김영덕 전 전무, 설우식 전 부사장 등 30여 명의 퇴직자들이 모였다. 길홍수 상무와 한상우 팀장 등 현직도 자리를 함께했다.
OB 모임은 단순히 친목 도모를 넘어 내부 결속 다지기, 정보 교류, 새 직장 찾기에 구심적 역할을 한다. 아울러 퇴임 이후에도 회사 발전을 위해 자문 활동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직에서도 꾸준히 모임에 참석해 퇴직자들과 함께 정보와 추억을 공유한다. OB 모임이 천경해운 임직원의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끈끈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모임은 분기에 1번씩 열리며, 20~30명의 퇴직자가 회사 인근인 을지로나 종로에 모인다.
| ▲왼쪽부터 설우식 회장, 정극 고문, 김영덕 초대회장 |
김영덕·설우식 회장 “회사 발전만 바랄뿐”
OB 모임은 2012년 천경해운의 창립 50주년을 기점으로 공식과 비공식으로 나뉜다. 비공식 모임은 현재 OB 모임의 고문인 정극 전무를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 명의 퇴직자들이 모여 비정기적으로 자리를 가졌다. 퇴직자들이 한두 명 늘고 인원이 제법 많아지면서 창립 50주년을 맞아 모임이 공식화되면서 규정과 격식을 갖추게 됐다. 김영덕 초대회장은 지난 2012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회사에 이바지하는 퇴직자가 되자는 바람에서 OB 모임을 공식 발족했다.
모임의 1~2대 회장은 천경해운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1973년 천경해운에 입사한 김영덕 1대 회장은 5년간의 일본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한 뒤 20년간 근무하고 2004년 1월 퇴임했다. 퇴직 이후에도 앞서 회사를 떠난 선배는 물론 후배들과 연락하며 친목을 다졌다.
공식 모임은 올해로 13돌을 맞았지만 20년 전부터 OB 모임이 출범할 수 있는 토대를 꾸준히 닦아온 셈이다. 김영덕 회장은 “회사 창립 50주년 이전에도 모임이 있었는데 그땐 제가 젊어 총무를 맡았다. 정극 전무님과 함께 비공식적으로 모임을 자주 가졌다”고 말했다.
2대 회장은 김영덕 회장의 입사 6년 후배인 설우식 전 부사장이 2019년부터 맡고 있다. 설 회장은 1979년 천경해운에 입사해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도쿄 주재 사무소 소장으로 근무한 뒤 본사로 돌아왔다. 2010년 천경해운 전무로 승진한 뒤 2015년 10월부터 2017년 말까지 일본 법인에서 부사장 및 상담역을 지냈다.
정극 전무는 천경해운이 10돌이 되던 해 경력직 과장으로 입사한 뒤 10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해 30년간 자리를 지켰다. 정 전무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1~2대 회장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을 제가 뽑았다.(웃음) 김영덕 회장과 연락을 지속하면서 모임을 유지하고 50주년을 맞아 공식 모임으로 확대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단체여행 호응도 높아”
모임에서 진행하는 단체 여행은 회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OB 모임은 2012년 공식 발족된 뒤 4번의 단체 여행을 다녀왔다.
2014년 인천항을 방문해 아시아 최대 규모인 내항 갑문과 선박 입출항 과정을 둘러보고 국내 최초 액화천연가스(LNG) 추진 선박인 <에코누리>호에 승선해 인천항의 제반 시설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이듬해엔 부산신항을 찾아 자사선 845TEU급 <스카이빅토리아>(Sky Victoria)호를 견학하는 한편 천경해운 부산사무소에 들러 해상과 육상 직원들을 격려했다. 이어 2018년과 2023년 중국 장자제(장가계)와 일본 홋카이도로 가족 동반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9월엔 3박4일 일정으로 일본 돗토리현에 위치한 요나고를 방문할 예정이다.
정 전무는 “故 김윤석 회장님뿐만 아니라 김지수 회장님과 서성훈 사장께서 많은 관심을 두고 모임에 후원을 해주고 계시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 회장도 “서성훈 사장께서 모임에 가끔 나오신다. 회사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니 모임과 회사 모두 더 잘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OB 모임, 본사에 故 김윤석 회장 흉상 설치
설 회장은 천경해운이 한국해운의 역사이자 동시에 미래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1980년대 해운합리화 조치를 단행했다. 1984년 5월 발표된 해운합리화조치에서 111개로 난립하던 해운업체를 20여 개로 통합하고, 부실 채무의 상환을 유예해 줬다. 천경해운은 해운 합리화 조치에도 사명을 변경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16년 5월엔 우리나라 해운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천경해운 창립자인 고(故) 김윤석 회장이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했다. 그는 1962년 천경해운을 설립, 우리나라 최초 계획조선에 참여해 <천경>호를 신조했고, 1967년 일본 선박회사와 송출 계약을 체결하며 22년간 우리나라 선원들의 일자리 창출과 막대한 외화 획득과 선진 해운기술 도입에 기여했다. 더불어 ‘해기사 승선실습 후원회’를 통해 후배 해기사들을 지원하고 한국해사문제연구소, 해운학회 등의 창립에도 힘을 쏟았다.
천경해운은 선복량 순위에서 사상 처음으로 톱 50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프랑스 해운조사기관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7월16일 현재 천경해운은 컨테이너선 총 17척 1만8700TEU를 운항해 세계 51위에 올라와 있다. 현재 건조 중인 신조선 5386TEU 정도를 인도받으면 50위권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김영덕 회장은 “회사 근무 당시 제일 자랑스러운 순간은 해운업 합리화 이후에도 천경해운이 회사 이름 그대로 살아남아 발전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때 없어진 회사가 많았는데 당시 근무했던 임직원은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OB 모임이 천경해운 본사에 설치한 故 김윤석 회장 흉상 |
회사와 OB 모임, 서로를 향한 관심은 남다르다. 사측은 지난 2012년 50주년 행사에 OB 모임을 초대해 퇴직자들의 헌신과 노고를 기렸다. 이 자리에서 OB 모임은 김지수 회장에게 감사의 선물을 건넸다. 퇴직자들도 2016년 십시일반으로 모금해 천경해운 서울 본사에 故 김윤석 회장의 흉상을 제작 설치했다.
OB 모임은 앞으로도 전·현직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한층 강화해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다. 설우식 회장은 “모임의 목적은 특별히 무슨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모임을 유지해 나가면서 회사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전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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