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필리핀 마닐라항 체선현상이 올해 상반기까지 지속돼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닐라항을 기항하는 선사들은 현재 체선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지만 정작 필리핀 당국은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해운업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필리핀 중부 지역을 강타한 태풍 하이엔의 영향으로 구호물자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시작된 마닐라항 적체 현상은 필리핀 경제 호황으로 인한 수입 화물량 급증으로 더욱 심화됐다. 특히 올해부터 강화된 마닐라시의 주간트럭운송제한과 비영업용 차량단속 시행은 마닐라항의 체선과 항만혼잡을 악화시켰다. 현재 마닐라항의 컨테이너 야드 점유율은 적정수준을 크게 초과한 120%를 넘어선 상황이다.
마닐라항 개발이 수년째 미뤄지고 있는 점도 체선악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현재 필리핀 정부는 연결도로와 배후부지 투자를 기피하고 있고 항만을 교통체증의 원인으로 보고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외곽인 바탕가스항과 수빅항 이용을 권하고 있지만 문제는 화물 양하를 원하는 화주가 없다는 것이다.
지연된 체선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마닐라항 기항 선사들은 아직도 스케줄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사들은 필리핀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자 기항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운항 스케줄을 1~2주 건너뛰고 있다. 실제로 터미널은 컨테이너 화물로 가득해 본선 하역도 어려워 항상 7~8척의 선박이 부두 앞에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케줄 지연으로 인한 손실을 막고자 선사들은 필리핀향 수출화물에 대해 긴급비용보전할증료(ECRS)를 도입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했지만 이마저도 일시적인 보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선사들은 4월~6월까지 TEU당 150~250달러의 긴급비용보전할증료를 부과했다. 마닐라항을 취항하는 한 정기선사 관계자는 “3~4일은 기본이고 1주일까지 스케줄이 지연되고 있다”며 “할증료 적용은 보전차원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북항에서부터 시작된 마닐라항 체선으로 인해 일부 선사들은 마닐라 남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남항마저도 선박들의 대기시간이 길어지며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어 선사들의 고충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필리핀 정부가 현 상황에 대해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선사 관계자는 “마닐라항 터미널운영사와 마닐라시에 적체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똑같다”고 한숨 쉬며 말했다. 이어 그는 “필리핀 입장에서 자국 선사가 없다보니 우리의 의견이 더욱 잘 반영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닐라항 체선은 올해 연말까지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마닐라항의 수출입 물동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화물을 내릴 수 없어 선사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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